가 어쩌면 낚시 일수도.. Miss Expanding Universe
를 한 스푼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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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치렀던 개인전이 작년 초에 잡히면서, 가뜩이나 많은 생각에, 더 많은 생각과 무게를 얹고, 작업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지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지난번 작업실 소개에서 보여드린 자코메티의 책을 다시 뒤적여보곤 하는데요. 나이가 들어 인정받은, 어쩌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더 큰 인정을 받은 그의 삶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나이가 들어 조명받고 싶다는 뜻은 아니고요.. 젊은 시절 가구를 만들었던 것 부터, 조각과 페인팅에 집중하는 시기까지. 끊임없이 자기만의 시각 언어로, 지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묵묵하게 이어갔던 그의 삶은, 들여다보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을 줍니다.
저는 시각 매체를 선택해서 작업을 해나가는 많은 작가들이 모두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굉장히 늦게 깨달았던 것 같아요. 고백하자면 뭔가 미술이라는 세계 안에서 현대미술이라는 영역(?)이 가장 높은 가치에 있다고 바보같이 구분지어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개념적인 미술에 집중한다면, 누군가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박한 자연을 그려낼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해석과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철학적인 작업을 한다면, 누군가는 아이도 노인도 이해할 수 있는 다정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확하게는 그 모든 가치가 높고 낮음 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첫 번째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요. 동시에 나 또한 작업하는 삶을 산다면, 어떤 작업을 하는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게 되었어요.
때때로 지금도 “이제 그만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어떻겠니”, “하나를 선택하면 더 쉽게 잘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더 해봐야겠니?” 같은 류의 질문이나 걱정을 받기도 하는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뷔페 이외에 하나의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고, 먹고 사는 일로 디자인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 말들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 뭐하냐?’ ‘너무 돌아가나?’ ‘나는 왜 이렇게 온갖 것들을 다 들여다 봐야 하지?’ 하면서, 일이 많을 때는 작업을 못 하는 것이 스트레스, 작업에 집중할 때는 먹고 살 걱정으로 스트레스. 그렇게 어떻게 해도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 같아요.
내 필살기는 뭘까?
갈래갈래 나눠진 일들이 버거울 때, 끊임없이 묻기도 물었었지요. 뾰족하게 잘하는 하나를 떠올리기가 어렵더라고요. 결국에는 이것저것 동시에 감각을 세워서 집중하는 것이 그나마 제가 가진 발달된 기능인 것 같더라고요. 하나를 진득하게 하는 그런 50년 전통 사골국 집, 장인 이런 건 못하고요. 싫증을 잘 느끼고 궁금한 게 많은 저에게 이렇게 변화를 주는 일들의 환기가, 결국은 여러 가지를 그나마 진득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오늘은 그 생각인데, 내일이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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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내도록 이런 고민들에 집중하면서, 가장 깜깜하고 무거운 시기, 나무를 배우러 가게 되었습니다. 벌써 내년 회관을 채울 6번의 전시가 확정되었고, 그중 첫 번째 전시는 그때 나무를 가르쳐준 목공 선생님의 개인전입니다.
어디 가서 누구한테 나무를 배우면 좋을까.
긴 텀을 두고 여러 목공 하시는 분들의 계정을 찾아보고, 지켜보면서 저에게 맞을 수 있는 취향을 추려갔던 것 같아요. 사실 추려갔다기보다는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내가 언제 목공을 배울 틈이나 생기겠나 하는 생각으로 조금 결이 다르다고 생각되는 계정을 보지 않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결국 현우 선생님이 남아있더군요. (이 메일을 보시게 되면 부담과 동시에 “어유,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놀리듯 반응하시겠지요. 미리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그맘때쯤 시간과 상황, 모든 게 기적적으로 맞아지면서 고성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사람에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전시를 기획해야겠는 생각이 든 것도, 결국 그 작업실에 놓여진 덩어리들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볕이 잘 드는 작업실에, 주로 나무로 이루어진 오브제들을 배치한 조형이 많았는데요.
제가 해오고 있는 작업과 크게는 소재만 다를 뿐, 어쩌면 작업의 프로세스나 이야기하고 있는 지점들이 비슷할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무엇보다도 각각과 전체가 무척이나 귀엽고 따뜻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작업 같은 사람일까 궁금함이 많았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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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이사무 노구치 Isamu Noguchi의 <Miss Expanding Universe>이야기 언제 나오나,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언제나 중요한 이야기는 ‘결’에 나오는 법. 기승전이 보기 어려우시다면 블랙박스까지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아니에요. 가지 마세요.. 잠시 삼천포에 들렀다 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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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적으로 발견된 형태나 덩어리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덩어리를 어딘가에 하나 놓지 않았을까. 그리고 다음 덩어리, 그다음 덩어리가 가진 인상들을 거듭해 놓고, 쌓고, 위치를 옮기며 장면을 만들어가지 않을까. 이런 작은 행위가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러다 필요한 덩어리가 생기거나, 과정에서 얻은 영감으로 새로운 덩어리를 구상해보기도 하겠지.
거듭하여 만들어진 조형성을 갖춘 장면이, 언어로 말하기에 모호한 어떤 심상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지. 그렇게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과정과 시간들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어쩐지 동일시하며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알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었답니다.
그의 가구만이 아니라 스스로가 작업을 하고 있다고 인지하지 않으면서, 왠지 모르게 그러고 싶어서, 모으고 만들어오게 된, 너무도 작업의 한중간에 있는 이 덩어리들을 꼭 조금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몇 번이고 생각했었답니다.
아무래도 전시라는 형태로 작업물을 보여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고, 더군다나 이게 앞서 말한 것처럼 가구만을 보여주는 방식도 아닐뿐더러, 지난 시간이 자연스레 쌓이며 만들어낸 장면이다 보니 전시로서 풀어가는 것이 얼마나 더 낯설지, 작게나마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많은 공부와 레퍼런스가 필요하겠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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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찾은 한 꼭지가 이사무 노구치였습니다. 전시 이미지를 검색해보았을 때 생각보다 더 미니멀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의 작업에서 오는 간결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에서 어딘가 맞닿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되었어요. 이제 정말 소개하게 될 <Miss Expanding Universe>의 형태적인 특성도 그렇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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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치의 작품 중 단연 조명이, 다음으로는 테이블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예외적으로 조각 설치 작업 <Miss Expanding Universe>를 무척 좋아합니다. 뭔가 여자인지 천사인지 모를 오묘한 쉐입이 참으로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침대로 몸을 던지는 퇴근 후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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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마음이 가서 조금 더 찾다 보니 이런 이미지를 만났지 뭡니까.
사진 속 여인은 시카고의 무용수이자 안무가 루스 페이지 Ruth Page입니다.
저 요상한 자루 의상도 노구치가 파란색 저지 소재로 만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포트레잇은 FS Lincoln이라는 건축 사진가가 1932년 찍은 것으로, 재밌는 점은 의상이 먼저인지 첫 번째 사진의 조각이 먼저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해요.
페이지는 이 자루 의상을 입고 <Expanding Universe>라는 안무와 공연을 만들었고요.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둘은 연인이 되어
1년 남짓 사랑을 지속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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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는 마천루에 자리 잡은 클럽의 저녁 콘서트에서 노구치의 '아름다운 배고픈 표정'에 매료되었다고 해요. 다음 사진을 봐주세요.
어떻게 아름다운 배고픔이 느껴지시나요.
시간이 흘러 '섹스'라는 타이틀의 미공개 에세이에서 그녀는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며, 특유의 솔직함으로 '그 역시 나를 첫눈에 사랑했다'고 기록했다고 해요.
만난 시간이 길지 않지만, 그 기간 동안 둘은 서로에게서 큰 영감을 주고 받았고, 그러한 영감들은 놀랍도록 독창적인 작품들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얼마나 친밀했던지, 그 친밀함으로 어떤 예술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두사람의 전기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우며, 그들이 주고받은 서신 등은 보관소에 현재까지도 봉인되어있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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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적인 이야기가 가장 재밌지만, 이 작업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의 우주 팽창 발견과, 당시 "공황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팽창한다"는 미국의 낙관주의, 풀러 Fuller의 이론 등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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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파다 보니, 다시 노구치가 만든 자칫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의상을 섬세하게 들여다 보게 되었어요. 탄성 있는 소재로 만든 제약과 구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페이지의 몸짓이 오히려 자유를 강렬하게 외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자유에 대해 말하고자 한 작업은 아니지만, 저의 해석은 그렇게 덧붙더라고요. 아무래도 스스로를 투영해서 보게 되나 봅니다.
작업에 시간을 쓰고, 마음에 귀 기울이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곳간은 비어가고. 다가온 가을, 추수의 계절 아니겠습니까. 지난 시간 농사가 잘 이루어졌던지 거두어야 할 일들이 쏟아지고, 또 한참을 달려야 하네요. 바쁘고 고될수록 몸은 축나고 마음은 헛헛해지는 것은, 또 가을이여서일까요. 약속한 일들 최선을 다해 책임감 있게 잘 마치고, 저는 자루 의상을 다 찢어발기고.. 자연으로 돌아갈 거예요. 무화과 잎 하나 챙기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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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전부터였던가 크리스마스의 꿈이 있었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만화방에서 반쯤 드러누운 채로 슬램덩크 같은 긴 만화를 보면서 짜장면을 시켜 먹거나, 아니면 자연에 가서 캠핑까지는 아니어도 의자 하나 펴놓고 역시나 반쯤 누워서 따뜻한 차를 마신다거나 하는 겁니다. 그러고 지겨워질 때쯤이나, 어우 춥다 들어가자 할 때, 장을 봐서 뭔가 소박하게나마 만들고, 맛있는 와인이라든지 음식이랑 어울리는 술을 마시며, 쳇 베이커를 듣고 눈이 풀릴 때까지 수다를 떠는 것입니다. 그날은 My funny valentine보다는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Except sometimes)(가사가 상황과 반대에 가깝지만, 단지 오르골 소리와 쳇 베이커의 음성이 겨울 생각 나기 때문에),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을 듣고 싶어요. 캐롤도 좀 듣고요. 따뜻한 집에서 담요를 덮고 달달한 귤을 까먹어서 손톱 끝이 노래지고 싶습니다. 뭐 올해도 틀린 것 같지만요..
아무튼 이렇게 잡다하고 정신없게 마무리해봅니다. 일주일 뒤면 입동이네요. 모쪼록 감기 조심하시고, 자유로운 2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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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메일 카카오, 다음 메일이 발송 장애로 늦게나마 재발송해드렸는데, 어떻게 잘 전달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메일을 전달받지 못하셨다면 회신주셔요!
다음달 뷔페뷔페는 11월 15일, 30일 발송됩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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