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약 한 달간 지독하게 바빠서, 도무지 글을 쓸 시간과 자신이 생기질 않더군요..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겠고요. 이럴 땐 쌓여있던 것이라도 까보자 싶어, 저의 2022년 노트 일부를 공개해볼까 합니다.
과연 재밌게 느끼실지 전혀 알지 못하겠지만, 필사, 월간 스케쥴, 업무 계획, 글을 쓰기 위한 스케치 등이 담겨 있고요. 그 속에는 뭔지 모르겠는 것부터 부끄러운 것까지 섞어서 양을 때려 넣었습니다.
여기서 부끄러움과 양은 어떤 반성의 의미라고 할 수 있고요.. 그 와중에 너무 버벅거리지 않도록 최대한 많이 담으면서도 깨지지 않는 최소 크기(px)와, 해상도(dpi)를 맞추었습니다. 아무래도 스캔본이다 보니 모바일로 보는 것보다 데스크탑으로 보는 것이 편하실 것으로 생각되어요. 많은 양, 내키는 것만 취해주세요. 과식은 좋지 않으니까요. 그럼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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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간 몰스킨 노트를 쓰고 있습니다. 하드커버를 사용하다 소프트커버로 넘어온 지 몇 년이 되었고요. 룰드, 플레인, 먼슬리 다이어리 등 모든 양식을, 크기는 라지와 엑스라지를 즐겨 사용합니다. 몰스킨은 1997년 탄생한 브랜드로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브루스 채트윈 등의 예술가와 사상가뿐만 아니라 현대의 많은 작가가 여전히 애정하고 있는 노트북입니다. 크기, 무게감, 종이의 질감, 견고하면서도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열어젖혔을 때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넘어가는 각도를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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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이 글을 읽고 소중한 인연들에 전하는 편지의 끝자락,
그들의 아침과 저녁, 꿈과 무의식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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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뜨거운 차를 쏟으면 사진 먼저 찍지 말고, 치료부터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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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강원도 방문에서
빌린 책 한 권을 들고, 밤에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옮겨적은 글.
그때의 고민이 담겨있는 듯 보입니다. 여전히 하고 있는 고민이고요.
아마 삼월이 더 지나서 기록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빈칸을 찾아 기록하다 보니 앞쪽에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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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프레소 버츄오를 구매할 의향이 있으시다면, 우측 페이지의 맛을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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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는 대체로 강원도군요.
속초에 머무는 동안 즐겨 가던 카페에서 스케치한 작업 노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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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 만든 스툴의 도면입니다. '조금'이라 이름 붙여주었지요.
튀어나온 조금의 틈과 벌어진 조금의 틈이 모였다 하여, 그렇게 이름 붙였지만. 사실 많이 튀어나와 있어서.
개명을 해야하나 싶습니다. '윗툭튀'라든지.. 쨌거나 스툴에 어울리는 폰트도 만들어 보았고요.
일을 하지 않고 지낸 시간, 떠나있어도 결국 비슷한 일들을 만들어서 하게 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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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돌아오기 직전으로 즘이려나요.
뭔가 이방인으로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마음에
까뮈의 이방인을 사서 후루룩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범우문고의 책을 좋아하는데요. 그 이유는 규격과 무게, 클래식한 디자인 때문이에요.
사실 번역은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어딘가 떠날 때만큼은 범우문고 책을 챙기게 되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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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첫 시집을 읽는 일.
또래 시인의 시를 읽는 일.
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가 내 또래에 쓴 것들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이런 방식의 읽는 행위에서 시대를 넘어 연결성을 느낍니다.
앞서 남긴 걸음의 모양이나 방향이나 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첫 시집을 읽는 일은 어디선가 뚝 떨어진 거대한 행성을 관찰하는 느낌이랄까요.
두 배로 온전하고, 소중하고, 충만한 마음이 됩니다.
특히 그 중 첫 페이지를 읽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올봄에는 조온윤 시인의 햇볕 쬐기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습니다.
세 권의 시집을 사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요.
참 많이 추천하기도 했지요. 볕처럼 포근한 시인의 시각에 안겨 보낸 계절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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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돌아왔습니다.
혼란하고 붕 뜨는 마음을 다잡아 보려 찾은 인영 선생님.
첫 만남부터 차도 차지만 온갖 사적인 이야기를 쏟아 놓았던,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남겨둔 첫 엽저는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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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글의 스케치. 우측 페이지에서 좌측 페이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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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시작.
상단의 문구가 마음에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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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공포증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비둘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사분사분 우측으로 좌측으로 길을 피하다 결국은 빙 둘러 학교에 가느라 지각을 한 적도 있었답니다.
아름답고 다양한 목소리, 귀여운 생김새를 가진 강원의 새들을 만나면서, 새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여행 이후 도시의 새, 비둘기 옆도 조용히 지나갈 수 있게 되었고요. 물론 푸드덕 날 때면 다소 놀라긴 합니다만, 그런 제가 새에 관한 글을 기록하는 것은, 강원을 그리워하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전보단 낮은 빈도겠지만, 여전히 그곳이, 그곳의 조용함이, 차갑고 외로운 겨울이, 그립습니다.
하단은 헤어질 결심 영화표로 추정.
연필로 쓴 문구는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시집의 시작을 여는 '시인의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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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식자재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써 보았던 것으로 추정. 왜 썼는지는 알 수가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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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은 제주에서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쓴 글, 하단은 친구가 보내준 이야기와 시를 읽고 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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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날아온 책과 그 속의 편지에 있었던 글과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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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날아온 또 다른 책의 부분과 주애에게 속초 여행 때 참고하라고 간단히 그렸던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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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해서 만난 절벽에 핀 꽃에 대해 글로 쓴 크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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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아침은 전문이 아닙니다. 한 문장이 더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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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불길을 꺼보려 바빴던 한 해였네요.
지나고 보니 제주의 자연 속에서 보낸 시간이 많은 것을 내려놓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시금 노트를 뒤적여보는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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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짤단의 대장인 은미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뉴스레터라는 것을 해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요.
제 딴에는 아주 큰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약속을 어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들로 미루거나 하게 될 때가 있지만, 사실 약속을 다시 조정하거나 하는 것도 그렇게 내키는 마음은 아니에요. (앗, 여기서 저는 제가 지키는 약속에 있어서 그렇게 엄격하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싫지만, 그만한 이유들로 약속을 조정하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요지는 약속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점 보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듣는 순간 믿게 되기 때문이고요.. ㅋㅋ 그런 제가 불특정 다수와 약속을 해서 뭔가를 지속적으로 보낸다는 것은 정말 거국적인 결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송하는 날을 제외한 모든 날, 마음이 무거워요. 마음만은 거의 문인이 따로 없습니다..
이렇게 결심하게 된 은미님의 한마디를 말하고 싶었는데, 어째 또 이상한 말들이 많아졌지만.
"윤주님은 마음속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많은 지점들을 받히기 위해서, 촘촘하고 넓은 세계를 짜는 것 같아요. 그 세계를 기록해보면 어때요? 이렇게 사방에 널려있는데." 하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잠깐만요! 이건 적어야 해!"하면서 받아적은 것이 왼쪽 페이지 상단의 촘촘한 세계였습니다.
촘촘한 세계를 '짠다'라는 표현에서 전날 건율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겹쳐서 떠올랐습니다.
"나는 니트다. 나는 세상을 니트처럼 산다. 그러니까 나 하나보다 세계가 중요하고, 특히나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이루기도 하고, 거기에 하나가 뜯어지기 시작하면 후루룩 다 풀려버리는 거다. 사실 나는 내가 그렇게 제일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하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촘촘한 세계라. 하며, 진지하게 기록에 대한 고민을, 정확하게는 기록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안철수가 예전에 백신을 개발할 때 몇 월 며칠, 00백신 나옵니다. 공표를 먼저하고, 그 후에 백신을 만들기 시작했다더라." 하는 말을 즐겨하는데요.
그런 것처럼 뷔페뷔페는 책임 속에 저를 내 던져 각을 잡고 고쳐앉아 기록하게끔 만들어 둔 장치입니다.
이 기록들이 누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결국 저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 조금은 다르겠지만요.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지금 살아가는 방식을 제대로 보고 당연하게 기억할 것 같지만, 사실 많은 것이 시간이라는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 같아요. 불과 5년 전 받은 편지만 봐도, 아 우리가 그런 시간을 보냈었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아. 하며 흐릿해진 기억에 새삼스레 놀라게 되니까요.
저는 계속해서 변해가겠지만, 오늘 나의 흔적을 잘 기록해두고 싶어요. 이것은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돼요. 갈대처럼 잎은 산발로 사방팔방 흩날리고 몇 번이고 쓰러지겠지만, 땅속에 뿌리만은 튼튼하게 흙을 가득 움켜쥘 수 있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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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는 붉은 벚나무 체리로 만들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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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 왼쪽 검지가 말썽이어서 불안에 떨다가
문득 영화 러스트 앤 본에서 나왔던 대사들이 떠올라 찾아보았어요.
병원은 정말 지독하게 싫어서, 왠만하면 피하고 싶어요.
손가락은 다행히 많이 좋아졌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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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하단 예준의 낙서.
좌측은 스맨파에 출연한 유메키라는 댄서 분의 말도 안되는 허리의 꺾임, 우측은 주호민님으로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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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설레고 기쁠 것 같은 만남이, 조금은 무겁게 놓여있었습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정확히 나는 어떤 마음인지 스스로 물어도 알 수가 없었어요.
이 뉴스레터를 정리하며, 새삼 한 해를 물리적으로 돌아보면서 약간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시간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내왔는지.
지나간 시간의 길이와 무게와 깊이를 이제서야 바라봅니다.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 스스로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마음속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솔직하게는 지금도 얼마나 그 시간과 지금의 제가 다른지, 정도를 잘 알지 못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무언가가 변하고 있고, 변했다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정말 많은 인풋이 있었어요. 다시 많은 사람을 만났고요.
참 많이도 감사한 시간들이었어요.
저는 욕심쟁이여서, 그런 감사한 일도 금방 희석해 날려버리고 말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작고 큰 감사함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아주 끔찍하게 표독스러웠던 시절도 있었고요.
제 주변에 언제나 머물러주는 친구들에게 다시 참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소에는 잘하지도 못하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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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다시 얼굴을 마주했을 때 잔잔하게 나눈 이야기들이 무엇보다 편안했고요.
어떤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웠을까 생각해보면 특별하게 어떤 이슈라고 말할거리가 떠오르지 않지만, 무척이나 즐거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원래 저의 온도로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고요.
왜 지난 시간 그렇게 앓았던지 어렴풋이 납득이 가기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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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를 쓰는 일을 많이 하지만, 이렇게 섬세하게 돌아본 일이 있을까요.
한 해가 끝나기 전에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은 좋은 일일까요?
마음이 소란스럽습니다.
쏟아지듯 만난 반가운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고, 가을이 왔어요.
이사하고 처음 난방을 틀었는데, 작동이 되질 않고요.
방이 추워서 마음도 추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일이면 기사님이 오셔서 수리해주실 거예요.
따뜻해지겠지요.
안 오셨어요. 오늘은 오신대요.
따뜻해지겠지요.
그럼 계신 곳에서 도톰한 옷차림으로 가을바람 충분히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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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mu Noguchi_ Miss Expanding Universe_ Aluminum_ 103.8x88.6x22.9cm_ 1932(cast1948)
2주간의 부적 이미지로 이번에는 노구치의 미스 익스펜딩 유니버스를 보냅니다.
사실 부록으로 이 작품에서 뻗어나간 재미난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다가,
이 이야기를 다음 뉴스레터에 써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일일 드라마의 예고처럼 큰 궁금함을 불러일으키진 못하겠지만,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어쩌다 보니 이번에도 과식을 선동한 것 같아, 다음 뷔페뷔페는 소박하게 차려보려고 해요. 마음처럼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정말 말일에 뵙겠습니다.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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