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자 Nadja
이번 글은 초현실주의 소설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Nadja)』의 해설… 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기록과 해석을 담아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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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지극히 제 개인적 관점에서의 시작으로, 다소 유치하거나 편중된 해석일 수 있어요.
- 닫힌 독서를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요.
- 초현실주의라는 사조를 현실로 마구 끌어들여 갖다 붙이려 한다 느낄 수 있으며, 개념 미술을 빙자한 애매한 작품의 해석처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니야? 라고 억지스럽게 와닿을 수도 있습니다.
- 저는 스포일러에 전혀 예민한 사람이 아니어서, 봤던 걸 또 본다든지 다 알고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문학이든 영화든 직접 감상하는 것이 더 우선시 되어야하는 성향이라면, 이 메일을 끄고 나자를 먼저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일러두기/
- 앙드레 브르통, 『나자(Nadja)』, 오생근 옮김, 민음사, 2008
- 중략은 (…)로, 앞으로 뛰어넘은 중략은(…<)로 표기했습니다.
- 나자의 등장부터 어쩐지 나자와 저를 동일시 하게 되어서 그런지 평어를 사용하였습니다.
- 본문은 필사 이미지, 사진 이미지, 하얀 박스 위 회색 고딕체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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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방 한쪽.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책장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책장은 빈틈없이 가득 책이 꽂혀있었고요. 현미경으로 DNA를 들여다보듯 한 칸 한 칸 한 권 한 권 책등을 훑어봅니다. 저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과 단 한 권의 책도 겹치지 않는다는 것에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입니다. 연결되는 지점을 그나마 찾아본다면 익숙한 작가의 아트북이 보였고, 언젠가 읽었던 데미안 한 권이 있었습니다. 겹치는 책이 없는 것에 놀라는 저를 보고 그는 의아해했고, 의아해하는 그를 보며 저도 의아해했습니다. 책이 사람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종일 걸림 없이 즐겁게 소통한 그 아래에 문학이 야트막하게나마 깔려있을 거라 멋대로 생각했나 봅니다.
시간이 지나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혹시 나자 읽었어? 잘 모르겠고, 널 떠올리면 나자가 생각나”
“나자가 어떤데?”
“글쎄, 모르겠어. 있는데 없고, 초현실주의 소설이야. 어쨌거나 나자가 생각나. 재밌게 느낄진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의 결혼식 피로연으로 정신이 없었던 터여서 책 정보를 메시지로 남겨 달라며, 이른 시일에 읽어보겠다는 말로 급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 날 무거운 숙취 속에서 지난 밤 남겨진 연락들을 확인하다, 나자를 발견합니다.
오랜만에 쉬는 날이기도 했고, 뭔가 당장에 읽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가까운 대형서점의 재고를 검색해보았으나 세계문학 전집 중 유독 나자만 쏙 빠져있더군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 아래 정말 조그마한 도서관에 가보았더니, 나자 발견. 그렇게 나자를 읽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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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전하는 말
인간의 삶 속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은 일련의 경쟁 관계에서 놓였다가 결국 그 싸움에서 아주 쉽게 곤란한 상태에 빠져 버리는 쪽이 대체로 주관성이다.
…
이것은 변함없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하겠지만, 객관성에 대해서 사소한 배려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결국 객관성 만을 존중하여 좀 더 정확한 표현에 이르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싶을뿐이다.
…<
“포즈를 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과 같은”
…
의도적으로 장식의 표현을 배제한 것이 소실점을 일상적인 경계 넘어로 멀어지게 함으로써 독자의 새로운 공감을 얻는데 기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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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p/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브루통이 당시 글을 쓰던 자세를 알 수 있는 작가의 말입니다.
알아두고 가면 전체를 이해할 때 도움이 될 듯해요. 나자를 읽었을 때 어떤 전개나 나자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글도 삶도 작업도 주관적인 부분이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객관적인 태도나 형식을 취하면서 만들어진 거리감이 때로는 핵심을 선명하게 보여주거나, 예상하지 못한 더 정확한 지점에 가 닿을 수 있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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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p/
빅토르 위고를 말할 때 <레 미제라블>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자코메티를 말할 때 <걷는 사람>을 빼놓을 수 없듯이요. 저는 작품이 그 사람을 꽤나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만, (작품이 취향과 맞지 않을 때 작가 자체에 대체로 매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편협한 인간이긴 합니다만) 결국에 우리의 생활을, 사소하게 반복하는 습관들을 제외하고 우리를 말할 수 있을까요.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 대단한 작품이지만, 어쩐지 저는 위고가 쥘리에트와 똑같은 산책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반복했던 말들과 자코메티가 점심때마다 늘 가는 카페에서, 늘 먹는 것을 (달걀 완숙 두 개와 빵 한 조각, 차가운 햄 두 조각, 보졸레 포도주 두 잔, 그리고 커피도 큰 잔으로 두 잔)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진정으로 그들을 조금 더 알았다는 마음이 들어요. 더 안다는 것은 더 사랑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무엇보다도 그것/그의 역사와 생활을, 시답잖은 것들을 알고 싶어요. 와인이 피라미드를 지었다든지, 그가 고개를 뒤로 젖혀 아래로 내리뜨는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든지 하는 것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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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ng of Love_ 73x59.1cm_ Oil on canvas_ 1914 |
Le Printemps_ Oil on canvas_ 35x27cm_ 1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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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p/
도입에서 이 책에 매료되었던 큰 이유는 키리코 때문이었습니다.
흔히 이 시절을 떠올리면 르네 마그리트, 파블로 피카소, 마르쉘 뒤샹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동시대에 키리코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문헌이 많지 않은 키리코를 이렇게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것에 기뻤습니다.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키리코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형태들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익숙하게 놓여있는 오브제들의 낯선 배치로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이 점이 제 작업과도 닿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익숙하게 놓여져 있는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발견하고, 그것들을 다시금 배치해 그려냅니다. 이렇게 만들어낸 구조적이고 조형적인 풍경은 이미 결정되어버린 세계를 다시 해석하는 것이며, 그 해석은 여러 가지 복잡한 것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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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6p/
변태적으로 공감해서 좋았던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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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p/
나는 마치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만의 비결이라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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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6p/
눈화장부터 시작은 했지만, 화장을 끝마칠 시간이, 아니 끝마칠 마음도 없이
시작을 했지만 시작의 이유를 모르고
알아본 적 없는 그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종종 찾아온다
잠깐만 두 눈을, 움직임을 바라보아도 이미 다 알 것만 같은 경솔한 마음이 든다
매일이 소란했던 곳에서 언제쯤 이 지옥이 끝날까 바라던 어린 시절
감각이 지나치게 열려버린 걸까 가끔은 생각해본다
때로는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오감이, 육감이, 눈치가, 섣부른 판단이,
상처받기 싫은 두려움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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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에요, 왜냐하면 나자는 러시아어로 ‘희망’이라는 말의 어원이기 때문이고, 또 단지 어원일 뿐이기 때문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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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p/
솔직하게 믿지 않는다 희망에 대해
솔직하게 믿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희망없음에 인이 박인 듯한 그녀의 이름은 나자다
냉소적으로 무관심하게 희망의 어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녀의 이름이 나자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나자를 안아주고 싶다
그녀는 희망을 포기했거나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일관하지만,
본인의 이름을 나자라고 붙일 만큼 희망을 믿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희망을 부정해도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내 손을 잡고 끝도 없이 믿었지만 실패한 그 희망을 한 번만 더 믿어보자고,
또 실패할 수 있겠지만 우리 그렇게 해보자고 그런 말들을 기다릴 것 같은 그녀의 이름은 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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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p/
아내의 존재를 드러내고 난 뒤 나자의 말
어조가 잠시 달라졌지만 금방 돌아와서,
당신이 가고자 하는 그 길을 당신은 걸을 것이고, 결국 당신은 목표하는 곳에 닿을 것이라는 당신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표한다
당신이 그 길을 가듯이 내 앞에 당신을 향해 난 길을 나도 걸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보는 별을 당신이 결코 내가 보는 식으로 볼 수 없을지라도
그 별은 마음이 없는 꽃의 마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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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p/
당신이 나에게 해준 것들, 그 이전에 당신의 생각, 언어, 존재 방식에 감동한다
가능한 한 낱낱이 알고 싶고, 가능한 한 낱낱이 사랑하고 싶다
당신을 몇 분 더 붙잡고 가능한 한 낱낱이 감동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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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p/
나자는 그 시를 처음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읽고, 그 다음에는 아주 면밀하게 살펴 보듯이 읽었는데, 그 시가 그녀에게 반감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강렬한 감동을 준 것처럼 보였다
시가 영상이 되어 숲 주위를 돌고 있는 시인을 바라보다, 그 시인을 시야에서 놓친 듯, 시로 돌아와 자신이 읽다 만 부분보다 약간 위쪽 부분부터 다시 읽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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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p/
그런데 나자, 정말 이상해! 내가 얼마전에 읽은 책 중에서 당신은 모르는 책이 있는데, 지금 당신의 표현이 그 책 안에 쓰인 것과 거의 같은 식이야. 나자, 당신은 도대체 어디서 본 이미지를 말하고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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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p/
스핑크스의 발밑에서 급사한 사람처럼 어둡고 차가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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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p/
나자가 지난날 겪은 어떤 사건들에 대해, 아주 상세히 전해 들은 그는 견딜 수가 없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온전히 회복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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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위협을 받을만한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 이 정도의 말을 텍스트로 옮기기에도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살아가는 게 운전처럼 나 혼자 조심한다고 해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구나, 싶다가도 나에게 벌어진 기막힌 일들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자초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자기혐오가 이어지던 날들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이렇게 살아서 타이핑을 하고 있는 것에 새삼 놀랍고도 감사하다.
적정한 인간관계에서 내 모습을 정제된 부분만 비출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한 친구와 이야기했듯이. 난 이렇게 생겼어요. 그러니 얼른 도망가시지 그래요. 네, 우울하고요. 잘 지내도 못 지낸답니다. 하면서 어쩌면 내가 실제로 가진 우울보다 더 큰 우울을 앞장세워,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나를 알 수 없는 것이 그렇게 다가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가도, 모든 것을 깨버리고 다가와 줬으면 좋겠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그렇게 뭔가를 엎어보려는 용기를 느끼면 나도 한 번 다시 희망을 믿어볼 텐데,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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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그와 그녀가 더 이상 만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더 이상 그녀를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에 나는 무척이나 슬퍼졌다. 물리적으로 그들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보다, 그에게 그런 생각이 이미 들어버렸다는 것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더 보지 않아도 다 알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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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통과 헤어지고 가난에 시달리던 나자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한 끝에, 투숙하고 있던 호텔 복도에서 붙들려 보클뤼스 정신병원에 수용 되었던 것 같다. 그는 정신의학에 대해, 그 학문의 과장된 의식과 성과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경멸감 때문에 나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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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받아 적어주세요.
초현실주의식 고백법입니다.
당신이 넓은 슬픔의 숲 뒤에서 가끔 미소를 지었듯 나를 향해 미소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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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통은 『나자』를 쓰기전, 「현실성 결핍에 대한 개론적 담론」이란 글을 통해 허구적 인물들을 만들어 이야기를 꾸며 대는 소설가들을 비판하면서 이제는 무엇보다 현실성이 담긴 진정한 삶의 이야기를 써야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말을 즉슨 『나자』가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적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자는 실제 인물이다. 브르통은 1926년 10월 4일 파리의 한 거리에서 우연히 이 여자를 만난다. 소설의 중심에는 브르통이 나자를 만나면서 경험한 실제의 사건들이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중심적 사건 외에도 시작하는 부분과 끝나는 부분에서 서술된 브르통의 생각과 경험들은 모두가 진실과 사실의 토대 위에서 쓰인 것이다.
브르통은 이 이야기와 관련된 장소들 중 몇 군데를 다시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는 물건들과 장소들을 신중히 생각하여 특별한 각도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예외적인 몇군데를 제외하고는 『나자』에서 도판으로 들어있는 사진이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쉬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모색하려 하지 않고 "나는 어떤 영혼에 사로잡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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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어떤 영혼에 사로잡혀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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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뷔페뷔페는 16일, 31일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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𓃗
오류 정정
지난 메일에 담긴 이 오브제는
다릅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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