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하고 있습니까? 정확하게 사랑하기
당신은 사랑하고 있습니까?
최근 어딘가에 빠져있나요?
그렇다면 사랑의 대상을 떠올려보세요.
그것을/그를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나요?
저는 가능한 한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세밀하게 면면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에 비유하자면, 천천히 꼼꼼하게 음미하듯이 말입니다.
귀중한 요리를 만날 때, 우선 눈으로 접시를 바라보고, 다음으로 향을 맡아 맛을 상상해 봅니다. 조화롭게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접시 위의 재료들을 한입 크기로 정돈합니다. 입 안에 넣고 씹었을 때 치아에서 잇몸으로 가닿는 식감, 혀끝에서 혀뿌리까지 느껴지는 맛과 입안 가득 퍼지는 온도, 씹기 시작한 순간부터 목구멍 뒤로 삼키는 순간까지의 밀도에 집중합니다. 그런 행위를 반복하며 그 요리가 단지, 짠지, 풍미나 감칠맛이 좋은지 감각하며, 신선한 식자재를 사용했는지, 조리 과정은 어떠했을지 연상해봅니다. 좋아하는 음식일수록 조금 더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그 요리의 역사, 쓰인 재료의 제철 시기, 혹은 원산지라거나 자라난 곳의 토양, 기후를 안다면 좋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토양이나 기후까지 아는 분이요.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식들을 끝도 없이 쏟아내시지요. 마음속으로 닮기 싫다고 참 많이도 말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닮은 곳투성이입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예쁜 구석도 못난 구석도 낱낱이 알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음식 대신 문학을 대입해 볼까요. 책의 표지는 마치 사람의 외관 같습니다.
어린 시절 표지에 반해서 택한 많은 책들은 대체로 실패의 경험이 되었습니다(요즘은 고전도 표지를 아주 예쁘게 갈아입더군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표지의 디자인은 책을 고르는 데 있어 우선하는 기준이 되지 않더군요. 물론 내용도 좋고 표지도 예쁘면 좋겠지만요.
다음으로 목차는 인간의 척추나 뼈를 떠오르게 합니다. 나무의 기둥과 가지 같은 것이지요. 기둥과 가지가 튼튼해야 그곳에서 피는 잎도 꽃도 과실도 견실하게 자라날 수 있겠지요. 단어와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와 쉼표, 마침표는 어떨까요. 저는 이것들이 우리를 이루는 세포와 그 세포 사이의 간격같이 느껴집니다. 가능한 이 세포의 단위까지 샅샅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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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으로 적용하기
문제집에도 공식 뒤에 예시가 붙듯이, 제가 사랑하는 것과 그것을 사랑하는 방식을 소개해볼게요.
최근 저는 알베르 카뮈의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발견하고, 그대로 푹 빠져들었습니다.
티파사는 카뮈의 고향 알제리의 한 지역입니다. 이곳'에서의' 결혼이라고 하니, 누군가와의 결혼을 연상케 하지만, 실은 뜨거운 태양, 육감적인 꽃들과 관능적인 향기,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 부드러운 바람을 가진 티파사 자체와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이 세계와의 결혼을 담고 있는 산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을 가득 채운 묘사들이 어찌나 화려하고 다채로운지 황홀하다 못해 멀미가 날 지경이였지요. 얇은 셔츠 하나만을 걸치고 따뜻한 공기 속을 이곳저곳 누비다 파도치는 바다로, 망설임 없이 곧바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익숙하게 묵독으로 한 번을 읽고 놀라서, 고대 그리스 시대처럼 소리 내어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공들여 음독했습니다. 천천히 읽는 제 목소리를 귀로 다시 들으며 만독했고요.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을 옮겨 적으며 필독해봅니다. 몇 번이나 그렇게 다시 읽었지만,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지더군요. 더 깊이 만나고, 흡수해서 체화하고 싶어집니다. 애초부터 마음에 드는 구간을 뽑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좋은 부분이 많았기에, 저는 저만의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전문을 필사하여 소책자를 만들 요량이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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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용지는 파브리아노 판화지를 선택했습니다. 오래 가지고 있던 종이라 정확한 평량은 알기 어렵지만 300g대로 추정합니다. 코튼 함량이 높은 이 종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 결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요. 제가 가진 것은 380x565mm 규격으로 재단되어있는 종류여서 재단선 부분은 일반 종이처럼 말끔하게 잘려있고, 그 외의 가장자리는 종이를 만드는 공정 중에 남아있는 솔기가 그대로 살아있는 특성을 가진 종이입니다. 그 솔기가 무척 예뻐서 소책자를 만들기 위해 재단이 필요한 부분도 이질감 없이 어울리게 작업하고 싶었습니다. 재단선을 표시한 후 오시(접어야 하는 부분이 잘 접히도록 압력을 가한 누름 자국)를 내고 폴더로 꼼꼼히 밀어 접은 뒤, 접지면에 붓으로 물을 스미게 하고 다시 펼쳐 천천히 찢어냅니다. 여기서 너무 손에 힘을 주고 당기게 되면 종이를 쥔 부분이 늘어날 수 있으므로 힘 조절에 유의해야 합니다.
판형은 범우문고의 규격을 참고했습니다. '여행 다닐 땐 범우문고지!'하며 특유의 판형과 가벼운 무게, 클래식한 디자인(거기다 좋은 가격)의 범우문고를 좋아합니다. (사실 번역이 가끔은 취향에 맞지않을 때도 있지만..) 가볍고 작게 만드는 것에 집중한 책들이 때로는 가독성이 떨어질 때가 있는데, 이 규격은 휴대가 용이하면서도 읽기에 불편함이 없어 단지 판형만으로 범우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110x174mm 만세.
내지의 좌우 간격은 15mm를 띄우고 하단 여백 20mm, 상단 여백의 경우 페이지수 표기 아랫선이 15mm에 걸리게 그 아래 5mm 여백으로, 본문이 나오기까지의 여백을 하단과 동일하게 20mm에 맞추었습니다. 페이지가 많지 않고 목차도 없는 책자여서 페이지수 기입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거의 다 만들어 갈 때쯤 들었네요. 왁스를 먹인 실이 없어 작업실에 굴러다니는 적당히 두꺼운 십자수실을 사용하여 제본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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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기와 접어서 찢은 선이 때때로 기준선이 되어야 했기에 평을 이루는 선 하나를 긋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집중하여 작업하는 것이 중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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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종이로 내지를 끼워 레이아웃을 스케치할 수 있는 종이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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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원래는 최근에 들인 그라폰 파버카스텔의 스톤 그레이 잉크를 넣은 트위스비 만년필 EF촉으로 쓰고 싶었지만, 아직 촉의 각도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원하는 글씨가 잘 나오질 않더군요. 걸음마 하듯이 못 걷는 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기분이어서, 특히나 작은 글씨를 쓰기에는 더 그런 느낌이 들어 수십 자루를 쓰고 있는 유니볼 시그노 스탠다드 UM-100 흑색 0.5mm로 옮겨 적었습니다. 가격도 착하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말고는 단점이 없는 엄청난 펜입니다. 떨어뜨렸을 때 촉이 잘 상하지도 않고, 잉크의 양이 일정하게 나옵니다. 왈칵 나오거나 끊기는 일이 없지요. 잔량이 뭉치는 잉크똥도 거의 생기지 않고요. 빠르게 말라서 손등에 쓸려 번질 염려도 없고요. 0.38mm는 너무 얇아서 필요에 따라 가끔씩만 사용하고 주로 0.5mm를 사용합니다. 색상도 굉장히 다양하고 발색이 좋아서 어떤 색이든 강력 추천이에요. 엘리베이터부터 펜까지 안 만드는 것 빼고 다 만드는 미쯔비시사의 펜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책자를 통해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소개해 봅니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저의 비명이나 감탄사의 나열이라고 보셔도 무관할 것 같아요. 해설이라거나 해석이라고 하기도 거창하고요. 그냥 수선떨며 친구에게 추천하는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어투일지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잡음에 방해받고 싶지 않으시다면 메일을 끄고 먼저 책을 구매하여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김화영 선생님이 옮기신 책세상의 <결혼·여름>의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보고 필사하였으며, 워낙 옛날 번역이라 한자어를 제가 다시 보기 편하게 조금씩 수정하여 적기도 했습니다. 원문과 단어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점 참고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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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적 키미테 하나 붙이고 가보자.
스캔본 위 꼭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시작과 끝을 색깔 원형으로,
이미지 하단에서 언급한 부분이나 짧은 표현은 색깔 선으로 표기해두었다.
(전체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다 읽어보았으면 좋겠지만..)
본문 1-2p를 읽고 밑에 달린 주접을 바로 보는 것보다,
흐름대로 스캔본을 읽은 뒤 하단 내용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특히나 색깔 원형으로 시작과 끝을 표기한 부분은 한 호흡으로 읽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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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사에서의 결혼
알베르 카뮈
번역 김화영
출판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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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페이지부터 도대체 어디를 줄 그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좋다.
두 눈으로 무언가를 보려고 애쓰는데, 속눈썹가에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만이 매달려 아른거리는 날. 햇볕이 얼마나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는지 한 번에 알 것 같다. 여기서는 ‘해’라기 보다는 ‘태양’이라는 단어가 분명 더 어울릴 것이다. 알제리의 여름의 대지. 그곳을 자욱하게 뒤덮은 꽃들의 향연.
‘크림처럼 두툼한 차향 장미’라는 표현이 특히나 마음에 든다. 옅은 레몬 빛의 크림을 스파츌라로 듬뿍 떠서 케익을 만들기 위한 스폰지 시트 위에 두어 번 퍼 올리는 장면, 아직 매끈하게 펴 바르기 전 크림의 부피가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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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죽인다.” 이런 워딩으로 좋은 것에 대해 표현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그런데 첫 페이지에서 두 번째 페이지로 넘어오는 이 도입에 대해, 어떤 감탄을 붙여야 그 정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그런 말들을 손쉽게 빌려오고 싶다. 하.. 최고다? 짱이다? 아닌데.. 좀 더 격렬하게 좋단 말이다. 찢어발겼다?
못해도 1-2p는 꼭 읽자 우리.. 부탁한다..
/살진 식물들이 내는 요란한 입맞춤의 소리, 바다가 핥아대는 첫 번째 바위들, 그곳을 향해 내려 뻗으면서 자라는 모습./
보라 노랑 빨강의 단어만으로도, 색상들이 이루는 대조로 화려한 꽃들이 파노라마로 떠오르는데,
그런 색상의 대비가 ‘요란하게 입맞추듯’이, 내려‘뻗으며’ 자라는 그 역동적임.
그리고 파도. 파도가 바위를 치는 부분을 ‘바다가 핥아대는 첫번째 바위’라고 표현한 것은 무엇..
문자를 보고 있는데 감각할 수 있다. 순식간에 내가 그 날씨와 풍경에 던져지는 것이다.
/주름살 하나 없는 바다를, 그 바다의 빛나는 치열이 짓는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먼저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한 바다의 먼 곳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빛이 바다의 잔물결에 떨어져 만들어내는 반짝이는 윤슬을 보았을 것이다. 빛이 반짝이는 조각의 연속적인 모양을 '바다의 치열’이라고 표현하였다..ㅠㅠ 울까.. 너무 좋잖아..
/폐허의 왕국으로 아주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관객이 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티파사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듯이 돌로 만들었던 집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사람이 떠나고 남은 폐허들.
이젠 꽃과 나무로 뒤덮인 폐허.
그런데 마을을 들어서는 도입, 우리가 관객이 되는 것이 왜 여기서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일까.
아마도 다음 문맥을 통해 예상해보거늘 그는 지금부터 압생트를 마시고 제대로 취하겠다는 것 같다.
압생트는 쑥을 원료로 한 굉장히 독한 증류주다.
카뮈뿐만 아니라 피카소, 해밍웨이, 랭보, 르누아르, 고흐, 고갱, 드가, 마네 등이 즐겨 마신 압생트는 ‘초록 요정’, ‘에메랄드 지옥’이라 불렸다.
‘필록세라 해충 사태’로 와인 생산이 어려워지자 값이 싼 압생트는 프랑스 군인의 보급품이 되기도 했다. 풍토병을 막기 위해서였다. 에메랄드 지옥이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 압생트는 강한 중독, 중독으로 인한 환각과 환시를 동반했다. 특히나 고흐가 이 술에 중독되어 황시증 때문에 노란빛의 그림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찾아보니 주원료로 쓰인 쓴 쑥에 들어있는 투오존이라는 성분이 환각작용은 물론 색맹을 만드는 독성이 있다고 한다. 1910년 스위스, 1915년 프랑스에서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었으며, 국내에서도 2010년 판매를 금했다.
압생트를 마시고 오르는 취기를 랭보는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구멍 뚫린 전용 스푼을 잔 위에 가로로 걸쳐두고 각설탕을 올리고 압생트를 살짝 뿌려준다. 그리고 불을 화르륵 붙여 녹여 떨어진 설탕물과 함께 마시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파괴적인 힘을 가진 압생트. 그런 술을 티파사에 입성하며 마시기 시작하는 것이다. 목구멍을 할퀴고 들어간 알코올이 온몸으로 퍼지며, 땅에서부터 태양까지 하늘도 취하여 휘청거리게 한다. 독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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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가장 좋거나 힘주어 쓰고 싶은 부분은 많이 틀리고 만다. 호흡을 가다듬고 흥분을 가라앉혀보자.
구태여 신화를, 디오니소스를, 데메테르를 거론할 필요가 있겠냐면서 은근슬쩍 본인도 그들을 끌어들여 한 번씩 거론하며, 그 위대한 신화와 신들의 표현을 빌릴 것도 없이, 코 밑에다 유향나무 열매들을 으스러뜨려 문지르는 것, 이 땅 위에서 본다는 것, 오직 바라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냥 지금이 너무 좋은 거다. 지금 이곳, 티파사의 대지, 태양 아래에서 보는 것, 향기를 맡는 것, 날씨를 느끼는 것.
/아직 대지의 정수로 향기가 배어 있는 몸을 풍덩 바닷물에 던져 땅의 정기를 바다에 씻어야 한다. 그리고 그토록 오래전부터 땅과 바다가 입술과 입술을 마주하고 열망하던 포옹을 나의 피부 위에서 맺어주어야 한다./
너무 귀엽다. 어쩌고 저쩌고 설명하지만 결국 대지의 열기와 향기가 가득한 몸을 바닷물에 던져야겠다는 이야기다. 헤엄치겠다고 싶다는 이야기다.
뜨거운 여름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질 때, 이제 나는 그렇게 말해보려 한다. “오래전부터 땅과 바다가 입술과 입술을 마주하고 열망하던 포옹을 나의 피부 위에서 맺어주어야 해!”
바닷속에 뛰어들면 차가운 온도로 전율이 오고, 뛰어든 속도나 무게만큼 캄캄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이 나에게로 용솟음치고, 귀는 웅웅 먹먹해질 것이다. 기도에 소금물이 들어가서 쓰게 느껴지고 콧물이 흐를 수 있다.
/수영을 하면 바닷물 밖으로 물이 번질거리는 두 팔이 솟아나와 햇빛 속에 금빛으로 물들고 전신의 근육이 뒤틀리며 다시 수면을 친다. 나의 몸 위에 물이 재빨리 미끄러지며 내 두 다리는 물결을 수선스럽게 소유한다/ 글만 읽어도 이미 헤엄치고 있는 것은 나뿐인가?
/그리고 문득 아득해진다. 기슭에 나오면 모래 위에 처박히듯 쓰러져 세계의 한 발치로 버림받은 바 되어 살과 뼈의 무거움 속으로 되돌아온다./ 한참 헤엄을 치다 뭍에 나왔을 때 내 몸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떠올려본다. 분명히 가만히 앉는 것이 아니라 ‘처박히듯’, ‘세계의 발치로 버림받은’ 것처럼 풀썩 널브러질 것이다. 중력이 적용된 살과 뼈가 얼마나 무거운가. /햇빛에 어리둥절해진 채 가뭇가뭇 내 두 팔에 눈을 던지면 물이 미끄러지면서 드러나는 물기 걷힌 살갗 위에 금빛의 솜털과 소금가루./ 기슭에서 곧바로 노트를 펼쳐 기록했을까. 그는 헤엄을 치며 이 감각들을, 적어도 머릿속에서 언어로 짚어보지 않았을까.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낄 것 없이 사랑할 권리다./
알제리 티파사에 위치한 그의 기념비에도 적힌 문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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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는 죽음이 삶 속에 정확하게 자리하게 될 때, 비로소 생을 정면으로 뜨겁게 맞이한다. 내 기억 속의 카뮈=뫼르소였고, 그 특유의 문체에서 위로를 얻었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끝없이 나에게 나를 묻는다. 조금 이해할 것 같다가도, 때로는 그 어떤 타인보다도 납득이 어렵고 관용이라고는 없이 야박해진다. 10대 때 그런 내 곁에 다자이 오사무의 오바 요조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데이비드 샐린저의 콜필드가 있었다. 그러고는 알베르 카뮈의 뫼르소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통해 다시 한번 카뮈에게 매료되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꼈다. 그가 삶을, 세계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있는 장면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외로워졌다. 이 산문은 그의 부분에 불과하겠지만, 황홀함이 몰려올수록 어쩐지 그가 멀어지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나도 알고 있다. 나와 나의 삶이 흔들릴 때, 주어진 시간과 그 시간을 채우는 아름다운 자연들이 나를 얼마나 버티게 해주었는지를. 그럴 때면 어딘가 한구석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의 순간도 그러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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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그 시대에는 질서나 절도, 철학에 대한 연구, 오만함에 대한 경계 등을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티파사에서만은 그런 것 따위 남들에게 양보해버리겠다고 말했지만, 의식은 되었던 모양이다.
/삶의 기쁨 속에만 온통 빠져있을 것도 아닌 바에는, 행복해진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향락을 두려워하는 자를 나는 바보라고 부른다./ 같은 문장이나 누군가가 말하는 '탈선', '정력 낭비' 등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속에서 그는 언제나 삶의 기쁨이나 향락만 좇는 것도 아니고, 행복해진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세계를 통해 삶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며(당연하게), 지금 내 손이 만질 수 있고 내 입술이 애무할 수 있는 것을 부정하려 고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생의 전반을 티파사와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그런 순간이 있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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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흡족한 풍경과 물려버린 풍경을 떠올린다.
언제나 고즈넉이 무언가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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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카뮈가 “윤주야, 이제 저녁 온다. 자. 고요하게 여기 앉아봐.” 말하는 것 같다.
바로 가서 옆에 앉을 거다. 내가 태어난 지 6개월 된, 내 몸집이 얼마나 커진지도 모르는 깨발랄한 골든리트리버여도, 고요하게 무릎 옆에 착 가서 앉을 거다.
그 와중에 /내 머리 위로 한 그루의 석류나무가 봄의 모든 희망을 송두리째 꼭 오므려 쥔 주먹처럼 홈이 파진 껍질을 덮고 있는 꽃봉오리들을 늘어뜨리고 있었다./는대 크... 어쩌냐.. 그래.. 사랑한다.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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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종일토록 기쁨을 누렸다는 사실이 유별난 성공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행복해진다는 것만을 하나의 의무로 삼는 인간 조건의 감동적인 완수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들은 어떤 고독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되찾는 고독은 만족감을 동반한다./
종일토록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유별난 성공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마지막 장에 대해 소감을 적기 위해 자리에 앉는 것이 어려웠다. 가능한 힘이 넘치게 들뜬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에 요즘은 좀처럼 힘이 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카뮈가 말하고 있는 '고독'이라기 보다는 '우울'에 가까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원체 인간이 늘 가라앉는 모양새여서 새삼스럽지도 않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우울감에 그래프가 있고 그 정도에 파동이 있다면 요즘은 지독한 상태의 지속으로, 좀처럼 그 녀석이 떨어지지 않고 곁에 딱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다. 행복해지는 것에 대해 의무를 삼지 않으면 괜찮아질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울감 덕분에 작업을 더 열심히 한다. 작업할 때만큼은 내가 조금이나마 쓸모 있는 인간으로 여겨지면서,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글로 써보자니 괜히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올해는 클라이언트와 함께하는 디자인 업무를 줄이고, 개인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연초부터 계획했다. 잘 이행하고 있지만, 누군가의 일을 받아서 기한 안에 계획을 세워 시간을 쪼개어 집중하는 일들을 없애니, 마음속 이유를 알 수 없는 요동이 더욱 격렬하다. 내 작업을 하는 시간은 너무 좋고, 다른 작업으로 방해받고 싶지만.. 뭘 어쩌라는 건지 나라는 인간을 나도 모르겠다.
아직도 여전히 어딘가 자연 속으로 도망칠 틈을 끊임없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아마 지난 1-2년처럼 시간을 비워 제주나 강원에 머무는 일은 이제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버는 일을 줄이고 쓰는 일을 늘린 대가다. 그래도 틈만 나면 발로 걸어갈 수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나만의 티파사를 찾아, 너무 뚫어지게 들여다보지 않고 고즈넉이 바라보고 싶다.
태양과 바다로부터 태어난 나는, 그의 단순성 속에서 위대함을 찾아낼 것이다. 차갑고 축축한 시간을 지나 하늘의 눈부신 미소에 공모의 미소를 던져 보내고, 사랑을 나누고, 나눈 사랑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오늘도 진심으로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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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가 카뮈를, 티파사, 문학을, 다시 말해 세계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담아보았습니다. 읽는 동안, 소책자를 만드는 동안, 글을 쓰는 동안, 사랑스러운 부분을 기억해두었다 친구에게 전달하는 동안 내내 친구는 제게 '변태'라며 혀를 차던데. 뭐 그렇게 틀린 이야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떤 짧은 구절이나 표현을 보아도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제 것이 되었습니다. 컨셉 상의 흐름으로 정확하게 사랑을 하는 방식이라는 둥, 그것에 대한 적용법이라는 둥 권장하듯 자랑했지만,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랑의 종류가 있고, 사랑은 '단지 사랑' 그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의 방식이 존재하겠지요. 저는 저의 사랑법이 때로는 미칠 듯이 좋다가, 빨려 들어가다가, 돌연 '언제 철들래?' 하며, 영원히 성숙되지 못할 것 같은 뜨거움, 부끄러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슬픔 속에 고요하게 혼자이고 싶다고 요란하게 외칠 줄밖에 모르는 모순된 인간답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사랑하고 싶다'는 말은 '이렇게 사랑받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우.. 근데 이 정도로 사랑받고 싶진 않은 것 같기도..
달달한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대신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이번 뷔페도 양이 많아지고 말았네요. 대체로 과식을 조장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여요. 한 번에 다 읽지 않으시더라도, 때때로 초콜릿처럼 원하는 만큼씩 꺼내 드시면 그것으로 충분히 기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뷔페를 찾아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티파사만큼 뷔페를, 구독자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ʃƪ ˘ ³˘) 께헷..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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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열기, 카뮈에 글에 영감을 받아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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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대환영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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