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질반질하게 낡은 바 테이블이 있는 그 작은 가게를 떠올린다. 때는 딱 이맘때쯤.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어디 몸을 덥힐만한 곳이 없을지 낯선 동네를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곳이었다. 새벽의 어스름 속에서 네모나고 작은 창을 통해 오렌지빛이 은근하게 퍼지고 있었다. 분명 몇 가지 요리를 먹었었는데 어쩐지 다른 음식들은 떠오르지 않고 수프, 따뜻한 수프만이 오랜 시간 기억 속에 남아 가끔 그날의 인상을 되새기게 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수프를 한 스푼 떠올려 입에 넣었던 감촉이라고 해야 할까. 스푼의 형태라고 해야 할까. 도톰하고 둥근 인상을 주는 도기 그릇에 주문하지 않은 크림색 수프가 담겨져 나왔다. 그 옆에는 일반 규격보다 조금 시원한 인상을 주는 은색 디너 스푼이 놓여 있었다. 한 스푼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스푼은 신속하게 혀 위로 미끄러져 입술을 빠져나왔고, 그 짧은 사이 남다르게 깊은 깊이와 넓은 넓이, 얇은 얇기를 전해주었다. 뭉근하게 끓여낸 수프의 온기가 풍부하게 입안 가득 퍼졌다. 가장자리의 모양은 어찌나 군더더기 없던지 입술을 빠져나오는 그 매끈한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건조한 표정을 가진 주인장의 따뜻한 정성을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작은 각도의 차이, 작은 두께의 차이, 작은 온도의 차이, 작은 점성의 차이에 대해, 수치화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맥주를 한 잔 더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외투를 벗지도 않고 맥주 한 캔을 꺼내 의자에 앉았다. 피스타치오를 한 줌 쥐어 사각형 테이블 위에 펼쳐 본다. 비정형의 곡선은 툭하고 입을 열고 있다. 연둣빛 알맹이를 꺼내 입 안에 계속 넣다 보면 곡선, 곡선, 곡선. 손가락으로 껍질을 깔 때 부드러운 곡선이 손끝에 머물렀다. 내가 좋아하는 형태들의 특성을 정리하자면 아마도 적게는 수십 수백 가지의 항목이 담긴 사전이 되겠지. 창밖에는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새는 까만 점에서 얇은 선으로 평을 이루고 다시 넓은 면이 되어 낮게 날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