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다. 나는 완전하게 실망했고, 그 이후에도 이 번역가를 찾으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찾을 수 없었다. 몇 년도에 어디에 실렸던 것인지 알 수 없는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첫눈에 빠진 사랑이 개중에 가장 흡사했던 것으로 기억나긴 하나 그마저도 조금은 달랐던 것 같다.
같은 원문도 각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마련이고, 이것이 번역가의 필터를 통해 우리말로 옮겨질 때, 그의 시각, 경험, 성품, 가치관 등 무수한 것들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때 배웠다.
본다는 것과 다시 쓴다는 것.
외서의 번역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오늘 나는 이 글을 쓰는 중간중간에도 내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본다. 내 옆자리에 앉은 너도 바라본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같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쓰고, 너는 지나가고, 너는 생각하고, 나는 놓친다.
첫 번째 보내는 글에 어떤 내용을 담으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먼저 시를 빌어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연이 몇 년 동안이나 우리를 희롱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알아보게 된 것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나의 시가 세 편의 시로 번역된 모양처럼 오늘도 나와 네가 무언가를 보고 있고, 이렇게 나는 쓰고, 너는 읽고, 내가 쓰는 동안 지나쳐온 생각에 너는 빠지고 나는 놓치고 있다고, 무의식을 의식으로 가져와 전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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